나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운 지 3년 차다. 짧다면 짧은 기간인데 워낙 많은 일이 있었다 보니 꽤 오래 키운 느낌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부쩍 고양이 키우는 사람이 늘어난 게 느껴진다.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요즘엔 고양이를 키운 지 20년 차 이상이신 분들도 많아 아직 초보에 불과하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인 조언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글을 쓰게 됐다.
고양이 입양 시 현실적인 고려사항
1. 경제적 여유
경제적 여유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기본중의 기본인 고려사항이다. 만약 지금 혼자 사는 것도 버겁다거나 고양이를 기르는 순간 기존의 저축 금액을 현저히 낮춰야 하는 여건이라면 난 반대하는 입장이다.
나는 주인이 행복해야 반려동물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편이라 키우는 사람의 생활과 노후준비 역시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이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는데 그런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나는 입양하기 전 주변에 고양이 키우는 사람이 유독 많아 현실적으로 얼마정도의 비용이 드는지 많이 물어봤었다. 그때 들었던 건 건강한 고양이 한 마리 기준으로 한 달에 10 ~ 15만 원 정도 들어간다고 들었었는데 내가 키워보니 그것보다는 더 드는 것 같다.
당장 고양이 용품, 사료, 모래만 해도 한달에 15~20만 원은 쉽게 쓰고(물론 이건 줄이기 나름), 여기에 영양제나 심장사상충 예방용 약값만 더해도 몇십만 원 더해지는 건 아주 쉽다. 온전히 나를 위해 소비, 저축, 투자하던 몇십만원의 돈을 포기하고도 후회 안 할 자신이 있는지, 일상생활이 가능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아픈 고양이를 입양한 경우가 아니라면 처음엔 고양이 케어와 병원비에 대한 무서움을 잘 모른다. 나도 아직까진 고양이들이 어리고 건강해서 아주 큰돈을 쓴 적은 없지만, 첫째 고양이가 장난감을 삼켜 내시경을 했을 때 100만 원 초반정도를 썼던 기억이 있다. 만약 이때 개복수술까지 갔다면 200 이상은 썼을 것이다. 단순 진료와 처방만 받아도 몇만 원씩 병원비로 나가는 게 현실임을 기억하자.
또한 어리고 건강한 고양이여도 1년에 한 번 건강검진은 필수고, 7~8살 정도가 되면 노령으로 접어드는 시기라 일 년에 2번 건강검진을 해야 한다. 건강검진 비용도 노령에 접어들수록 비싸지는데 사람 건강검진과 겹치는 해라면 최소 100만 원 정도는 깨질 각오를 해야 한다.
2. 나의 생활패턴
본인이 여행을 자주 간다던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너무 긴 사람이라면 추천하지 않는다.
다묘면 괜찮지 않냐는 생각도 버리길 바란다. 이것도 고양이 성향마다 달라 외동으로 지내는 게 더 나은 고양이가 있고, 오히려 합사 스트레스로 복막염이 오는 고양이도 있다. 고양이는 낮 시간 대부분은 잠을 자는 걸로 보낸다지만, 내가 집에 머무는 날엔 잠을 참을 정도로 사람을 좋아한다. 아무리 고양이가 여러 마리고 사이가 좋다고 해도 사람이 채워줄 부분은 따로 있는 것이다. 나도 이미 두 마리를 키우지만 전보다 더 집순이가 됐다.
3. 생활환경과 청결 정도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 생활환경이 중요하다. 충분한 수직공간, 충분한 개수와 크기의 화장실, 다양한 장난감과 스크래쳐, 햇빛을 쐬고 바깥구경을 할 수 있는 창문 등의 좋은 환경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문제행동을 하는 고양이도 있다. 이렇게 고양이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다 보면 고양이 집인지 사람이 사는 집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고양이 물품들은 부피도 꽤 큰 편이라 차지하는 면적도 넓다. 때문에 집이 꽤 넓지 않은 이상 내 생활공간과 인테리어를 중요하는 사람이라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또한 혀의 돌기 때문에 입에 들어가면 뱉어내기 어렵고 호기심이 많은 특성상 고양이는 '이식증'을 가진 경우가 많아 실이나 고무줄 등이 눈에 보이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등 청결과 정리에 항상 신경 써야 한다.
4. 일 혹은 자기계발 욕심 정도
이건 사실 내 경험에서 나온 조언인데, 일욕심이나 자기개발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고양이 입양을 추천하지 않는다.
사람 아이를 육아할 때 엄마, 아빠가 포기하는 부분들이 존재하듯 고양이를 키우는 것에도 내 삶의 일정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존재들이지만 함께 생활하면 고양이들에게 투자해야 하는 정신적, 시간적, 금전적인 것들이 생각보다 더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일 욕심이 많은데, 고양이를 키우면서 미래의 출산과 육아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됐다.
퇴근 후, 놀이 시간을 가지고 양치질만 시켜도 한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가끔 놀이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잘 놀아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로 내 주위엔 잘 놀아주지 않았던 문제로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받아 배변실수를 해 행동교정을 받은 케이스가 있다.) 이제 내 시간 좀 가져보자 하고 책상에 앉으면 어느새 고양이가 키보드 위에, 노트 위에 앉아버려 작업에 도통 집중하기 어렵다. 내 경우엔 일에서처럼 고양이 키우는 것도 FM 스타일로 하는 편이기도 하고, 고양이의 하루는 사람의 일주일과 같기 때문에 내가 오늘 이 아이들의 하루 루틴을 망치면 일주일을 망치는 것과 같다는 생각으로 임하다 보니 좀 더 시간이 드는 것 같긴 하다.
물론 함께 생활하하다 보면 조율하는 방법을 깨닫지만, 만약 이 정도의 불편함조차 부담이 될 정도로 내가 너무 일이나 자기계발 욕심이 많다던가 내 삶이 더 중요하다면 진지하게 입양을 다시 생각해 보자.
5. 본인 대신 봐줄 사람이 있는지 여부
갑자기 출장 갈 일이 생긴다거나 짧은 여행을 가야 할 때 내 대신 고양이를 봐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물론 펫시터나 호텔링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고양이는 환경변화에 예민한 동물이라 작은 변화조차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추천하진 않는다.
6. 미래 결혼 여부
자주 등장하는 파양 사유 중 하나가 '결혼'이다.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다. 물론 상대방이 고양이 알레르기가 엄청 심하다거나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거나 고양이는 좋아하지만 키우긴 싫을 수 있다. 아니면 이미 상대방도 여러 마리의 동물을 키우고 있어 현실적 여건 상 모두 다 키우긴 어렵다고 판단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평생 연애만 하던가 헤어지는 게 맞다. 그래서 미래 결혼 여부에 대해 고민해 보고 입양하라는 것이다.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그 사람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7. 고양이 알레르기 여부
고양이 입양 전 알레르기 검사를 꼭 해보길 바란다. 내과나 이비인후과에서 4-5만 원 정도에 혈액검사를 통해 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고양이를 아무리 만져도 알레르기 반응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없다고 생각하고 입양을 했는데 입양하고 6개월 뒤쯤 갑자기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났다. 한 달쯤 뒤엔 또 괜찮아지길래 당시엔 고양이 알레르기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1년가량 또 아무렇지 않게 살았는데 갑자기 호흡기 쪽으로 심하게 반응이 와서 혹시 몰라 알레르기 검사를 했더니 고양이 알레르기가 6단계 중 가장 높은 6단계로 나왔다. 알레르기는 없다가도 후천적으로 생길 수 있고, 잠복기 중 지속적으로 알레르기 환경에 노출되면 증상이 발현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차라리 노출될 거면 어릴 때부터 노출되는 게 오히려 면역력이 생겨 알레르기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내 경우엔 알레르기 저감 사료로 바꾼 뒤로 이전과 같은 심한 증상은 없고(대신 사료가 엄청 비싸다), 좀 올라올 땐 알레르기 약을 먹으면서 키우는 중인데 알레르기 증상은 천차만별이라 나보다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미리 알레르기 검사를 해보길 바란다.
고양이에 대한 이해와 조언
초보 집사일 때 고양이에 대한 유튜브를 엄청 많이 봤다. 너무 모르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키울 때도 사람 아이를 육아하는 것처럼 공부가 필요하다. 많은 정보 중 고양이 입양 전 알아두면 좋을만한 정보 몇 가지만 추려서 정리해 보았다. 이러한 고양이의 성향과 나의 생활패턴, 미래계획까지 신중하게 고려하여 확신이 들면 입양하길 바란다.
- 고양이도 외로움을 탄다.
- 성향에 따라 외동이 더 나은 경우도 있다.
- 고양이는 이갈이 시기 손이나 발을 잘 깨문다. (이 시기 상처 달고 산다.)
- 이름을 알아듣는 시기가 다르다. (인내심 가지고 자주 불러주기)
- 스트레스에 취약한 동물이다. 스트레스로 병이 생기기도 한다.
- 고양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양치질 생각보다 더 어렵다.
- 문제행동엔 생활환경의 이유가 대부분이다.
- 하루 최소 놀이시간은 20분 이상이며, 15분씩 하루 2~3번도 괜찮다.
- 고양이마다 장난감에 반응하는 시간이 달라 기다려줘야 한다. 바로 반응이 없다고 놀아주지 않으면 스트레스받을 수 있다.
- 고양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최대 기간은 3일이다. (고양이 성향마다 다르지만 일반적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