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디자이너로 취업이나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인하우스, 디자인 에이전시, 스타트업 중 어느 환경이 자신에게 적합한지를 고민하게 된다. 각 기업 형태는 업무 방식, 성장 기회, 워라밸 등의 측면에서 차이가 있으며, 이를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커리어 방향을 설정하는 데 중요하다. 하지만 큰 장단점은 이미 다들 알고 있으니 좀 더 현실적인 시각의 특징들을 정리해 보았다.
1. 대기업
현실적인 특징
대기업의 IT 디자인팀은 보통 대규모 프로젝트를 다루며, 체계적인 프로세스와 구조화된 업무 환경, 안정적인 급여와 복지가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네이버나 카카오처럼 디자인 주도권이 강한 기업이 아니라면 내부 디자이너는 실질적인 디자인 실무보다는 외주업체 관리와 일정 조율 업무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금융권, 제조업, 통신사 같은 전통적인 대기업은 디자인 에이전시나 외주업체에 UI/UX 작업을 맡기고, 내부 디자이너들은 그 결과물을 검수하고 방향을 조정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이렇게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어떤 조직에 들어가냐에 따라 업무 형태가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커리어적 욕심이 큰 신입의 경우, 생각과 다른 업무 형태에 크게 실망할 수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슬프지만 체계는 있는데 과정이 체계적이지 않은 곳들도 많아 '체계'에는 큰 의의를 두지 않는 게 낫다. 차라리 연봉과 복지에 장점을 두는 게 현실적이다. 아무리 성에 안 차게 느껴져도 대감집 노비가 낫긴 낫다.
장점
- 안정적인 급여와 복지: 연봉 수준과 복지가 좋으며, 정년 보장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 대규모 프로젝트 경험: 글로벌 서비스나 수백만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의 디자인을 경험할 기회가 있다.
- 네임밸류 있는 회사에서 커리어 성장 가능: 대기업 경력이 있으면 이후 이직이나 프리랜서로 활동할 때 유리하다.
- 내부 유의미한 데이터 확인에 유리함: 사실 난 연봉만큼이나 가장 큰 대기업의 장점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UI/UX/프로덕트 디자이너는 '논리'가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데이터가 정말 중요한데, 자본과 인력이 충분한 대기업에서는 이런 데이터와 인사이트, 사용성평가를 진행하는 것이 훨씬 수월한 편이다.
2. 인하우스 (기업 내 디자인팀)
현실적인 특징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특정 회사의 브랜드 및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역할을 한다. 스타트업부터 중견기업까지 다양한 규모의 기업이 있으며, 디자이너가 기획, 개발팀과 밀접하게 협업하는 형태로 일한다. '토스'와 '오늘의 집', '우아한 형제들' 등을 떠올리면 기업 구조가 잘 와닿을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중견 인하우스 기업이라면 괜찮겠지만 작은 조직일 경우 UX 리서치, 브랜딩, 마케팅 디자인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신입시절엔 이런 다양한 업무 경험이 오히려 커리어적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조직 규모가 대기업이 아닌 중견 이하의 인하우스일 경우 하나의 서비스를 장기적으로 성장시키며 디자인을 발전시켜야 하다 보니 서비스 내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한계를 느낄 수 있다.
장점
- 폭넓은 역할 경험: UI/UX 디자인뿐만 아니라 브랜딩, 마케팅 디자인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다.
- 빠른 의사결정 구조: 조직이 대기업에 비해 유연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하고 실험하기 용이하다.
- 자사 서비스의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개선 가능: 단기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서비스의 성장과 함께 디자인을 발전시킬 수 있다.
- 내부에서 직접 피드백을 받으며 개선 가능: 실무에서 사용자 반응을 확인하고 즉각적인 개선이 가능하다.
- 유연한 업무 환경이 많음: 대기업보다는 조직 문화가 유연한 경우가 많아 새로운 시도를 하기 좋다.
3. 디자인 에이전시
현실적인 특징
디자인 에이전시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따라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곳으로, UI/UX 디자인뿐만 아니라 브랜드 아이덴티티, 마케팅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을 다룬다. 디자인에이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빠듯한 일정과 높은 업무강도이다. 요즘엔 훨씬 덜하다곤 하나 4~5년 전쯤만 해도 야근은 물론이고 철야에 주말출근까지 자주 하는 분위기였다. 안타깝게도 그런 업무강도에 비해 연봉은 턱없이 낮은 경우가 많다.
또한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디자인, 기획 파워가 강하고 클라이언트를 잘 설득할 수 있는 관리자가 부재한 에이전시라면 클라이언트의 요구에만 휘둘려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또한 인하우스만큼이나 프로젝트에 애정을 가지고 임해도 '우리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에 유의미한 정량적 성과 데이터를 얻기 어려운 것도 한계이다.
사실 8~10년 전쯤만 해도 에이전시 전성기로 유명한 에이전시들이 굵직한 프로젝트를 내놓으며 국제적인 디자인상을 휩쓸 때였다. 그땐 대기업으로 가기 전 탄탄한 경력을 쌓는 단계로 여겨졌다면, 지금은 그러한 에이전시의 장점이 거의 사라진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쌓을 수 있다는 장점은 확실하긴 하다. 하나 조언하자면, 에이전시마다 주 고객 혹은 주 비즈니스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지원 전 해당 에이전시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주로 어떤 고객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확인하여 내가 경험하고자 하는 비즈니스가 있는지 먼저 확인해 보는 게 좋다.(예를 들어, 은행권을 많이 하는지, 이커머스쪽을 많이 하는지)
장점
-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 특정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산업군의 디자인을 경험하며 넓은 비즈니스 시각과 풍부한 포트폴리오를 쌓을 수 있다.
- 빠른 성장 가능: 다양한 디자인 트렌드를 접할 기회가 많고, 강도 높은 업무를 수행하면서 실력을 빠르게 향상할 수 있다.
- 업계 네트워크 형성: 여러 클라이언트 및 기업과 협업하면서 다양한 인맥을 형성할 수 있다.
4. 스타트업
현실적인 특징
소규모 조직이라 디자이너가 기획, 개발, 마케팅까지 다방면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회사의 성장과 방향이 빠르게 변하므로 그에 맞춰 디자인 방향도 자주 수정해야 하는 등 불확실성이 크다. 또한 빠른 실행이 중요하며 아직 체계나 시스템이 부족한 탓에 '체계'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신입의 경우 체계적인 업무 프로세스나 디테일한 디자인 업무에 대해 익히는 것이 어려울 수 있고, 조직 내 충분한 경험을 한 사수가 없다면 스스로 부딪혀서 배워야 하는 환경에서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는 방식인가?' 하는 의문을 끊임없이 가지게 될 수 있다. 어쨌든 스타트업은 모 아니면 도라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든다거나,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성장시켜 나가는 욕구가 샘솟는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장점
- 새로운 시도를 해볼 자유도가 높음: 대기업이나 에이전시보다 창의적인 실험이 가능하고, 개인의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 조직 문화가 유연하고 수평적일 가능성이 큼: 스타트업은 대기업보다 자유로운 문화와 빠른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 회사의 성장과 함께 커리어 성장 기회 증가
어떤 환경이 나에게 맞을까?
IT 디자이너로서 어떤 환경이 적합한지는 개인의 성향과 목표에 따라 다르고, 대기업이라고 다 체계적이지도 않고 작은 기업이라고 해서 다 주먹구구식도 아닐 수 있다. 성향뿐만 아니라 경력에 따라서도 커리어와 연봉 중 우선순위를 두는 기준이 다를 것이다. 내가 신입시절일 때는 바로 대기업을 가거나 에이전시 경력을 발판 삼아 대기업 이직하는 게 가장 일반적인 여정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에이전시 경력이 예전보단 임팩트가 없고 한편으로는 너무 불경기가 심하다 보니 불안정한 스타트업을 추천하기도 조금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백수인 것보단 들어가서 경력 쌓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완전 신입이거나 인턴 경력만 있다면 어딜 가든 배우는 건 있기 마련이기에 들어가서 이직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지금껏 일해보니 첫회사가 중요하단 것도 절반은 사실이라 본인의 성향과 커리어적 목표에 따라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물론 나도.
-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환경을 원한다면 → 대기업
- 브랜드 중심의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싶다면 → 인하우스
-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과 빠른 성장을 원한다면 → 디자인 에이전시
- 자율성과 창의성 보장을 원한다면 → 스타트업